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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탕바이 작성일20-11-16 17:26 조회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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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위 발언하는 이낙연 (서울=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16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0.11.16 zjin@yna.co.kr
최고위 발언하는 이낙연 (서울=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16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0.11.16 zjin@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유미 고동욱 기자 = 더불어민주당에서 이낙연 대표의 '임기 연장론'이 불거지고 있다.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16일 한 언론인터뷰에서 "이 대표가 책임 있게 보궐선거를 치르고 임기를 다 하는 게 어떨까 한다"고 언급한 것이 발단이다.

내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차질없이 치러내려면 지도부 체제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FX마진거래

당권과 대권을 분리하는 민주당 당헌에 따라, 이 대표가 2022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려면 1년 전인 내년 3월 9일 이전에 사퇴해야 한다.

서울·부산시장 선거일인 4월 7일까지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중요한 시점이다.

차기 대선의 전초전 격으로 재보선의 중요성이 커진 만큼, 이 대표 체제를 유지하는 게 낫다는 주장인 셈이다.

김태년 원내대표의 언급은 개인적 제안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열린 최고위 회의에서도 언론 동향 중 하나로 보고됐으나, 추가적인 논의가 이뤄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최고위 발언하는 김태년 (서울=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16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이낙연 대표. 2020.11.16 zjin@yna.co.kr

최고위 발언하는 김태년 (서울=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16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이낙연 대표. 2020.11.16 zjin@yna.co.kr
실현 가능성 측면에서는 당내 평가가 엇갈린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 대표가 공천만 하고 그만두는 것보다는 유세까지 다 마치고 그만두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으냐는 의견"이라며 "당내 이견이 없다면 고민해볼 만하다"고 긍정 평가했다.

그렇지만 당헌 개정 사안이라는 점에서 부정적인 시선도 많다.

특히 해당 당헌이 대선 후보 경선의 공정성을 위한 조항이라는 점에서 말을 아끼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대표직을 내려놓은 뒤 선대위 위원장을 맡아 재보선을 치르는 절충안이 오히려 현실에 부합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이 대표가 (재보선에서)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는데 굳이 당헌·당규 개정까지 갈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인호 수석대변인도 최고위를 마친 뒤 "당이 책임 있게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취지로 말씀하신 것 같다"고 전했다.

이 대표가 3월9일 이전에 물러나면 김태년 원내대표가 대표 권한대행을 맡게 된다.

sncwook@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슈진단+] 공공기관 문서 서비스 혁신, 성과와 과제 (하)
(지디넷코리아=김윤희 김민선 기자)
전국민에 보편적으로 제공돼야 할 공문서가, 비(非)표준 포맷인 'HWP'로 유통되는 현실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나왔다. 더구나 데이터 경제가 주목받으면서 폐쇄적인 HWP 대신 개방형 문서표준포맷(ODF)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얻었다. 지속적인 문제 제기가 일자 중앙 정부와 개별 부처,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공문서 서비스를 혁신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각각의 세부 내용과, 바람직한 정책 방향성은 뭘지 모색해봤다. [편집자주]

전자정부 서비스를 총괄하는 행정안전부가 ODF 전면 도입에 신중한 입장을 취하는 것과 달리, 일부 공공기관에서는 국제 표준을 준수하는 공문서 생산에 앞장서는 모습도 발견됐다.

ODF의 하나인 'ODT'로 전체 공문서를 유통하겠다고 발표한 경기도와, 보도·정책자료를 ODT로 전환할 계획을 꾸린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그 사례다.

두 기관은 공문서를 기계가 판독할 수 있는 국제 표준 포맷으로 제공해 공공 데이터가 폭넓게 활용될 수 있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아래아한글 비(非)사용자인 국민이 그 동안 공문서를 다루는 데 겪은 불편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도 기대되는 긍정적 효과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경기도가 대민용 문서 ODT 적용에 앞장서고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이런 움직임이 나타나는 가운데, 정부가 문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있어 단순히 포맷을 전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용자경험(UX) 중심의 서비스 혁신을 구상해야 한다는 전문가 조언도 제기됐다.

과기부·경기도는 왜 ODT 도입했나

과기정통부의 경우 ODT 도입 계획을 수립하고 지난 7월27일부터 배포되는 보도자료를 ODT 포맷으로 제공하고 있다. 일부 자료에 한정됐지만, 중앙 부처 중에서는 가장 먼저 ODT를 채택했다. 7월27일 이전에 배포했던 보도자료 1만1천여건과 정책자료도 연말까지는 ODT 포맷을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과기정통부 정보화담당관 관계자는 "국민 수요가 높은 보도자료부터 ODT 제공을 시작했다"며 "현재 추진 중인 홈페이지 고도화 사업이 완료되면 홈페이지에 문서 파일을 등록 시 ODT로 자동 변환해주는 기능이 탑재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ODT 도입 계획 추진 배경에 대해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최기영 장관이 관련 이슈에 관심을 갖고, 특정 SW에 공문서가 종속되는 현상 없이 무료 SW로도 공문서를 이용할 수 있도록 ODT 포맷 제공 계획을 추진했다"고 답했다.

과기정통부 홈페이지의 경우 HWP 파일에 대해 바로보기 뷰어를 제공하고 있어 자료 열람에 대한 편의성은 갖춘 상태다. 보도·정책자료를 ODT 파일로 제공하는 것은 생산되는 공문서를 데이터 활용에 바로 쓸 수 있게 지원할 수 있다는 데 의의가 크다는 게 관계자 설명이다.

경기도도 국제 표준 포맷인 ODT와 PDF 도입 계획을 세웠다. 내년부터 도입을 지속적으로 확대, 오는 2022년을 전면 도입 시점으로 잡았다. 계획의 일환으로 지난달 말부터 경기도지사 연설문 파일을 ODT로 제공하기 시작했고, ODT를 지원하는 문서관리시스템 '온-나라 문서' 2.0 버전을 도입할 예정이다.


경기도청 '디지털 표준화 추진 계획'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이같은 계획을 밝히면서 "공공기관에서 사용하는 문서 작성 프로그램은 특정 프로그램에 종속돼 ODF와 어긋나고, 스마트폰이 일상화된 모바일 시대에 사용이 불편하다"며 "무엇보다 다른 프로그램과 호환이 되지 않아 기계가 판독하기 어렵고 따라서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기 어렵다"고 계획 추진 이유를 밝혔다.

인사·채용 관련 정보의 경우 표준을 준수하는 데이터로 개방, 민간 구직 사이트에서 맞춤형 마이데이터 서비스 개발에 활용할 수 있게 하겠다고 언급했다.

"공공기관 서비스 혁신, 많이 진보했지만 갈 길 멀어"

공공기관 전체의 행정 혁신을 총괄하는 행정안전부에 비해 개별 기관들은 기동력이 더 높을 수밖에 없다. 과기정통부와 경기도청이 보다 선도적으로 ODT를 도입할 수 있는 이유다.

때문에 행안부가 ODT 도입 없이, '아래아한글' 라이선스가 필요 없는 공문서 서비스를 구현해낸 것만으로도 큰 진전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민석 오픈이노베이션 아카데미 학장은 "아래아한글 설치 여부와 상관없이 국민이 공문서를 편집할 수 있게 된 건 굉장한 진전"이라면서도 "다만 모바일, 태블릿 등 PC가 아닌 기기에서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또다른 지원이 필요할텐데, 이는 편집되는 문서가 비표준 포맷인 HWP라 발생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달 26일 서비스를 개시한 '모바일 문서24'에서는 모바일 기기에서 공문서 처리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단 PC 기반 서비스와 달리 문서 편집은 불가하다.

공문서 서비스를 지금보다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이용자경험(UX)을 새로 디자인하는 관점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제시했다.FX마진거래

이민석 학장은 "공문서 포맷보다 앞선 원론적 문제는 국민이 공문서에 수많은 내용을 손수 입력하게 하는 UX"라며 "정부 시스템 내에서는 주민번호만 입력하면 현재 살고 있는 주소가 연동되는 등 자동화가 이뤄져 있는데도, 국민이 내용을 입력하는 시스템에서는 이런 방식을 적용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런 UX 개선은 개별 문서 단을 넘어 공공 웹서비스를 전면 개편하는 방향으로도 이뤄져야 한다는 분석이다. 이 학장은 “포털 검색처럼, 홈페이지에서 키워드를 검색하면 바로 서비스를 연결해주는 등의 직관적인 UX 개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윤희 기자(kyh@zdnet.co.kr)
김민선 기자(yoyoma@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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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뉴시스] 국회사진기자단 =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6일 오후 경기도 과천 지식정보센터 모델하우스를 방문해 아파트 청약시장 부동산 정책 현장 점검을 하며 아파트 분양에 대해 브리핑을 받고 있다. 2020.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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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대학경제 임홍조 기자] 서일대학교는 2020학년도 기업가정신 강연자로 유튜브 크리에이터(핫도그TV) 권기준을 초청한다고 16일 밝혔다.

권기준은 서일대 재학생을 대상으로 1인 미디어 창업, 유튜브 수익구조 등 유튜브 크리에이터에 관한 특강을 펼칠 예정이다.

참가 학생은 마스크 착용 후 강당에 입장할 수 있다. 인원이 많을 경우 2층 좌석도 확장 운영할 계획이다.

서일대 관계자는 "학생들이 이번 특강을 통해 체계적으로 진로 방향을 수립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서일대 영화방송공연예술학과를 졸업한 권기준은 유튜브 채널 100만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임홍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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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학살 현장 답사기] 우리 가까이에 있는 비극

[박기철 기자]


▲ 임고서원 포은 정몽주 선생을 기리기 위해 1554년에 준공되었다. 지금은 예전과 달리 여러 부속 시설들이 들어서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지로 변모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부속시설은 현재 운영을 중단한 상태다.
ⓒ 박기철

내 고향은 경상북도 영천이다. 그리고 고향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임고서원'이라는 곳이 있다. 어린 시절, 임고서원은 꽤 괜찮은 소풍지였다. 그런데 이 일대 아작골(절골)이라는 곳은 한 번에 무려 150명 이상의 주민들이 학살당한 곳이었다.

지난 추석 연휴, 코로나로 인해 하루만 어머니를 뵈러 고향에 내려갔다. 그리고 시간을 쪼개 아작골을 찾아갔다. 지역신문에서 찾아본 바로는 임고서원에서 등산로를 따라 2.5킬로미터 정도 가다 보면 당시 사건을 기록한 안내판이 있는 현장을 찾아갈 수 있다고 나와 있었다. 그런데 찾기가 퍽이나 어려웠는지 두 번의 시도 끝에 찾았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마음을 굳게 먹고 출발했다. 하지만 태풍으로 넘어진 듯한 나무를 헤치며 두 시간 이상 헤맸지만 현장을 찾지 못했다. 결국 체력도 떨어지고 해까지 기울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산길이 익숙하지 않은 자신을 탓하면서도 현장을 안내하는 어떠한 이정표도 없었던 점은 무척 아쉬웠다.

'우리는 죽으러 간다', 임고면 아작골의 절규


▲ 쓰러져 길을 막고 있는 나무 이런 길을 헤치고 한참을 헤맸지만 이정표가 전혀 없어 결국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 박기철


1950년 7월 말께, 임고면 주민 10여 명은 경찰에 잡혀 영천 경찰서로 끌려 갔다. 이때 경찰서에는 약 150명이 구금돼 있었다고 한다. 1주일 정도 지난 후 임고면 주민 중 일부는 풀려났다. 하지만 나머지 인원들은 8월 7일 새벽, 트럭 대여섯 대에 나눠 타고 아작골이 있는 임고면 선원리로 이동했다. 끌려온 사람들은 임고면뿐 아니라 고경면이나 화북면 주민들도 다수 있었다.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밧줄에 묶인 채 아작골로 올라갔다. 이때 이미 자신들의 운명을 직감했던지 산으로 올라가면서 '우리는 죽으러 간다!'라고 울부짖었다. 이 절규는 트럭 소리에 잠을 깬 주민들의 귀에까지 와 닿았다.

잠시 후 골짜기에서 총성이 울렸다. 얼마 후 주민들이 올라가 보니 굴비 엮듯이 한 줄로 묶여진 시신들이 겹겹이 쌓여 있었는데 그 높이가 어른 키 이상 되는 골짜기를 다 채울 정도였다.

이를 바탕으로 학살 장면을 대략적으로 재구성해볼 수 있다. 먼저 경찰들은 끌고 간 사람들 중 일부를 횡으로 줄 세운다. 그리고 총을 쏘았고 사람들은 골짜기로 떨어졌다. 곧이어 그 다음 줄을 세우고 다시 총을 쏘았다. 이렇게 시체들이 골짜기에 겹겹이 쌓이게 됐다.

가족들은 시신을 수습하고 싶었다. 하지만 경찰은 현장에 접근하면 사상범으로 간주하겠다며 막았다. 그리고 낙동강 전투가 치열해지면서 주민들은 피난을 떠나야 했다. 결국 시신들은 수습되지 못하고 방치될 수밖에 없었다.

9월이 돼서야 주민들이 피난에서 돌아왔다. 그러자 경찰은 집집마다 한 명씩 나오라고 해서 시신을 치우게 했다. 더운 여름 날 한 달 이상 비까지 맞으며 방치됐던 시신은 형체를 알기 힘들 정도로 뭉개지고 뒤엉켜 있었다. 당시 아버지의 시신을 찾기 위해 온 구영회(1935년생)는 시신들의 부패 상태가 너무 심해 결국 아버지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수습되지 못한 시신들은 사건 현장에 대충 묻었다. 그러다 보니 사건 이후 10여 년이 지난 1960년 5월 26일자 <영남일보>에는 그때까지도 현장에 백골이 나뒹굴고 있다고 나온다. 또한 같은 기사에서 희생자들 중 일부는 '빨갱이 전과'가 있지만 대부분은 '관제 빨갱이로 몰려 학살된 양민들'로 보인다고 했다.


▲ 임고면 아작골 왼쪽 산 너머에 아작골이 있다. 현재 임고강변공원에는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지역 내 코로나 확진자 발생으로 인해 공원 출입이 통제된 상태였다.
ⓒ 박기철


국민을 보호하고 인도하기 위한 '국민보도연맹'

1950년 7월에서 9월까지 영천의 전체 희생자 수는 600여 명에 달한다. 특히 8월에만 380여 명이 집중적으로 희생됐는데 이중 아작골을 포함한 임고면 일대에서 사망한 인원은 280여 명이다. 일가족이 몰살 당해 수십 년이 지나도록 사망신고조차 못한 경우도 있었다.

이런 희생자 수는 인구 대비 규모가 큰 편에 속한다. 이에 대해 그저 좌익세력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단순화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오히려 미군정의 가혹한 미곡수집령과 일부 지주들의 농토 독점으로 쌓였던 분노가 불안한 정세 속에서 연쇄작용을 일으킨 것으로 봐야 한다.

특히 미군정의 미곡수집은 영천에서 가장 가혹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였다. 당시 영천군수 이태수는 미곡수집에 불응할 시 엄벌에 처하겠다고 했다. 군 식량계원은 공출에 응하지 않는 사람들을 세워두고 서로 뺨을 때리게 한 후 차에 태워 유치장에 가뒀다. 그런데 이때 운임 10원과 유치장 숙박료 90원까지 강제로 내게 했다.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계속되니 불만이 쌓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1946년 인접한 대구에서 미군정에 저항하는 10월 사건이 일어났다. 그러자 영천 주민들은 쌓였던 분노를 표출하며 수만 명이 봉기한다. 영천은 같은 시기에 봉기했던 22개 지역 중 가장 격렬하게 저항했던 곳 중 하나이다. 이 사건은 영천에서만 600여명이 체포되고 9명이 사형 선고를 받으면서 마무리되었다.

이후 국가는 1949년 6월 5일 국민보도연맹을 조직했다. 1950년 2월 경 영천에도 국민보도연맹이 결성됐다. 그리고 10월 사건을 포함해 이후 발생했던 유사 사건 가담자들이 다수 가입하게 된다. 이렇게 국민보도연맹 가입자가 많아지다 보니 희생자 규모도 커진 것이다.

국가는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하면 과거 좌익 활동 혐의를 묻지 않고 생명과 안전을 보장해준다고 선전했다. 앞선 임고 아작골 희생자 일부도 남로당 경력이 있었지만 이런 정부의 말을 믿고 가입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가입자들을 모두 좌익 인사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남로당 조직원들이 자수하고 가입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다수는 할당량을 채우기 위한 경찰과 당국의 회유와 협박 때문에 가입을 '당한' 사람들이었다.

빨치산에게 식량을 빼앗긴 사람도 전후 맥락 고려없이 무조건 부역자로 취급하던 시기였다. 이렇게 좌우익 양쪽에서 시달리던 양민들은 혹시라도 뭔가 작은 것이라도 책잡힐까 하는 걱정에 보도연맹에 가입했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정부는 이들을 모두 적대세력으로 간주하고 군과 경찰에 정리하라고 지시한다.

인권평화연구소 신기철 소장은 한국전쟁 초기에 정부가 낙동강 방어전선까지 후퇴했던 경로를 따라 보도연맹원 학살이 자행되었다는 점을 밝혔다. 국민을 '보호'하고 '인도'하기 위해 국민보도연맹이라 명명했지만, 실제로는 '비국민'으로 낙인찍어 죽음의 길로 인도했다.

학살은 가까운 곳에 있다

얼굴을 본 적 없는 나의 큰아버지는 한국전쟁에서 전사했다. 하지만 시신을 수습하지 못해 대전 현충원에 이름만 남겨져 있다. 그래서 어렸을 때는 할머니 손을 잡고 여러 보훈 행사에 따라가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천에서 벌어졌던 낙동강 전투의 치열함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끔찍한 학살에 대해서는 누구도 얘기해 준 적이 없었다. 영천의 학살은 임고뿐 아니라 대창, 북안, 금호 등 곳곳에서 자행됐다. 이곳은 모두 학창 시절 친구들이 살았던 곳이다. 친구들과 뛰어다니고 멱을 감던 산과 들, 강에서 수많은 민간인들이 피를 흘렸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너무 무관심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이를 계기로 시간이 날 때마다 전국의 학살 현장이 현재 어떤 모습인지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어떤 곳은 추모비와 추모공원이 세워져 있기도 했다. 하지만 많은 곳은 아작골처럼 현장을 안내하는 이정표 하나 없이 잊혀지고 있었다. 우리는 현대사의 불행한 일들을 나와는 멀리 떨어진 이야기로 생각할 때가 많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아무 지역명이나 입력하고 뒤에 '학살'이라는 단어를 붙여서 검색해보라. 조직적인 학살이 놀라울 정도로 광범위하게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올해로 진실화해위원회가 활동을 종료한 지 10년이 됐다. 하지만 아직도 밝히지 못한 사건들과 억울한 이들이 많다. 그래서 현재도 많은 사람들이 진실규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우여곡절 끝에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발족했다. 이들의 노력에 많은 관심과 지지를 보내는 것이 더이상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길 바라는 우리들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한다.파워볼사이트

[참고자료]
박태균, <한국전쟁>, 책과함께
신기철, <국민은 적이 아니다>, 헤르츠나인
임영태, <한국에서의 학살>, 통일뉴스
영천신문(2020. 5. 23) <영천문화유산 다시보기 2, 임고면 선원리 아작골 원혼비>
진실화해위원회, <경북 영천 국민보도연맹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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